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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 이야기

바이러스를 죽이는 구충제? in vitro 의 함정

 

 어제부터 Ivermectin 이라는 구충제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48시간내에 바이러스를 죽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나도 관심이 있어서 구글에 쳐봤는데, 자동 완성으로 "이버멕틴 테마주" 가 뜬다. 주식이 아니라 투기에 가깝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새로운 치료제에 대한 기쁜 소식이지만 이런 기사를 접할때는 정보를 걸러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기사에 나온 그 논문의 제목을 가져와 봤다. FDA의 승인을 받은 약의 코로나 바이러스 복제 제한에 대한 "in vitro" 연구라는 내용이다. 내용은 기사에서도 볼 수 있듯 48시간내에 대부분의 바이러스의 RNA가 관찰되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in vitro 의 함정 - 우리 몸은 패트리 접시가 아니다.

 과학논문에서 이탤릭체로 "in vitro" 라고 쓴 것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는 라틴어로 "접시 안에" 라는 뜻으로, 실험이 패트리 접시와 같은 신체 밖에서 이루어 졌다는 표시이다. 생체내 실험의 경우  in vivo, 로 표시 한다. 즉 이버메틴에 대한 실험은 통제된 패트리 접시에서 실행되었으며, 인체의 어떤 부작용에 대한 연구도 이루어 지지 않은 상태이다.

 

 패트리 접시 위에서 제한적인 조건에서 행한 실험은 그 약효를 인정하기에 무리가 있다. 예를 들어 알콜은 분명 코로나 바이러스를 죽일 수 있지만 (in vitro 실험에서 효능을 보이지만), 환자에게 알콜을 주사하는 의사는 없다. 급성 알콜 중독으로 사람을 죽이는 일 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in vitro 실험은 생체의 복잡한 상호작용과 조건들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in vitro 결과만 가지고 환자에게 적용하는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이다. 다른 항생제나 다른 항바이러스제를 in vitro로 실험해도, 그중 몇가지는 이버메틴과 같은 결과를 내놓을 수도 있다. 제약회사에서 1000개의 약이 in vitro 실험에서 효능이 입증되었다면, 그중 실제 약으로 상용화 되는 것은 1~2개 남짓인 것과 같은 원리다. 

 

가능성을 열어두되, 맹신하지 말자.

 이 구충제에 대해서 기사가 1면에 나고, 수많은 관심이 모이는 것을 보면서 항암치료에 개 구충제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생각났다. 개 구충제를 이용해 항암치료를 성공했다는 기사가 나면서 개 구충제의 가격이 2배는 뛰었다. 물론 개 구충제가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 일단은 항생제니까. 하지만 이게 사람을 치유하기 위해 만든 항암제에 비해 효과가 뛰어나다는 소문에 구충제를 먹고 오히려 치료에 독이 되는 경우들을 보며, 이번의 이버메틴도 그런 길을 가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다행히 이버메틴은 FDA 허가를 받은 대인용 약품으로, 메뉴얼에 따라 먹는 것은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인다. 또 이 실험의 결과가 바이러스 복제를 저해하는 메커니즘을 찾는 단서가 될수도 있다. 하지만 논문에서 확인할 수 있듯 바이러스 복제 제한을 위해 꽤나 높은 도징 (투여량 0.4 mg/ml)이 필요한 듯 보이므로, 괜히 민간요법으로 의사와의 상의 없이 과량을 복용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